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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들 애도속 양 노엘 신부 장례미사 '주님나라에 머무르소서'

신부님! 양 신부님! 몇번이고 불러도 또 불러보고 싶은 다정하셨던 양 신부님! 주님께서 참신한 한 사제를 이 세상에 그것도 어려운 시절 한국땅에 보내시어 그토록 그 나라르 사랑하게 하시고 그 나라 사람들을 아끼게 하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신부님은 주님이 주신 과업을 훌륭하게 수행하신 모범적인 사제셨습니다. 그러한 신부님을 더 오래 편히 모시지 못하고 떠나 보내야만 하는 남가주 모든 신자들은 그 슬픔을 참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좀 더 당신의 양들을 돌보실 수 있으신데 무엇이 그리 급하셔서 이렇게 훌쩍 우리의 곁을 떠나신단 말입니까.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신부님과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이 그때까지도 아직 살아가야 할 좌표도 정하지 못할 나이 25세 때 가족과 정든 땅을 등지고 낯선 남의 나라 한국에 오시어 어렵고 힘들었던 우리들을 친형제처럼 돌보시고 인도하셨던 20년. 우리와 함께 계셨던 어려운 이민 사목 지난 25년. 우리들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사람으로 사셨던 신부님께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신자 비신자 가리지 않으시고 가능하면 전후좌우 살피지 않으시고 앞뒤 순서 물어보지 않으시고 이해관계 따지지 않으시고 말씀대로 실행하신 신부님을 고개 숙여 존경하옵니다. 사목회장인 저희들이 마리아 성당에서 모임을 갖는 날이면 저녁 식사에 직접 오셔서 포도주 따라주시며 격려하시던 자상하심과 인자하심 성전에서 미사 집전하시던 그 모습 성당 곳곳에 남기고 가시는 그 흔적들. 이 모든 기억들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오래도록 간직하렵니다. 신부님 가시는 길 저희가 막지 못합니다. 주님께 가시는 길 저희가 붙잡지 못합니다. 고히 가시옵소서. 편히 잠드시옵소서. 부디 주님나라에서 영원히 머무르소서. 남가주 모든 신자들은 두 손 모아 주님께 기도 드립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남가주 가톨릭 평신도 회장 박홍기 요한 ◇박홍기 남가주 가톨릭 평신도 회장은 지난 22일 오전 10시 성 마리아 성당에서 열린 양 노엘 신부의 장례 미사 때 이 조사를 바쳤다.

2008-11-25

[추모사] 영원한 사제 양 노엘 신부님!

70년 고희와 사제 서품 45주년 축제를 준비하던 저희들의 기쁨을 뒤로 하시고 혼자의 먼 길을 떠나시어 마지막 고별의 글을 드리게 되는 저희 가톨릭 공동체 교우들은 더 없는 깊은 슬픔과 아쉬움에 가슴이 메어집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답하여 25세 젊음에 티 없는 어린양으로 하느님께 봉헌하고 고국 아일랜드와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먼 이국 한국땅에서 20여년간 사목 하시었습니다. 1984년에는 미국 남가주에 오시어 지난 25 년간 한인 이민 교우들을 위하여 사목하시는 동안 성 바오로와 같이 예수님의 삶을 사셨습니다. 기름 부어 받은 사제 서품 이후 미소한 자 버림 받은 자들을 찾아 다니시며 위로자가 되시었고 불의에 맞서 약한 자의 힘되어 주심으로 희망과 용기와 격려로 어둠에서 빛으로 이끌어 주신 양 노엘 신부님! 당신을 위한 것은 아무 것도 소유한 것 없이 오직 영원한 사제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순복(順服)하여 삶을 봉헌 하신동안 건강까지 잃으신 모습이 저희 마음을 더 아프게 했는데 이제는 다시 뵈올 수 없는 마지막 고별식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가시관 쓰신 예수님을 닮으시려 당신의 온 생애를 다 바쳐 모범의 길을 반영 하신 저희 영적 아버지이신 양 신부님! 저희들 모두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일치하여 사랑과 존경을 담은 영적 화환을 드립니다. 앞을 향한 목적을 위하여 경주하신 양 신부님의 사제의 삶에 천상에서 하느님의 상급이 마련되어 있음을 믿으며 희망과 부활이신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안식에 머무시기를 빕니다. (한인 가톨릭계의 큰 별이었던 양 노엘 신부는 지난 17일 LA카이저 병원에서 6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2008-11-20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인' 선종한 양 노엘 신부

17일 선종한 양 노엘 신부는 한인을 위해 평생을 바친 신부로 기억된다. 떡만두국과 국수를 좋아하고 한국인처럼 한국말을 하는 신부였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25세에 사제 서품을 받고 다음해 한국으로 파송돼 노동자 사목에 헌신했다. 전태일 분신 사건 등에 연루돼 추방위기를 맞기도 했다. 84년 밸리 한인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뒤로는 선종 때까지 25년간 한인 사목에 모든 것을 바쳤다. 이봉환 천주교 성 마리아 엘리자벳 한인성당 사목회장은 "한국 소식에 늘 귀기울이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꼭 기도에 넣으라고 하셨다"고 회상했다. 양 신부는 언제 어디서나 약자와 가난한 사람 편이었다. 노요셉 작은예수회 장애시설 운영이사는 "장애인 회의에 매월 자기 돈을 수백불 기증하셨다. 모두가 오래 오래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25년간 양 신부를 보필한 나 아우실리아 씨는 "신부님은 자기 소유를 만들지 않았다"고 울먹였다. "치과에 안 가셔서 이가 몇 개 없으셨어요. 신자들 집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살림 살피느라 개스비만 있으면 됐고요. 나머진 다 주셨어요." 이봉환 사목회장은 "여유있는 사람들은 인사도 받지 않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만 찾아 다니셨다"고 말했다. "신세 지지 않으려 신자들 집에 가도 물 한 컵도 안하셨어요. 1년간 모신 저도 딱 한 번 함께 식사했지만 그나마 식사비는 신부님이 내셨어요. 신자들이 더러 선물이나 옷 등 드리면 다음 날로 다른 사람 주시고요. 삶 자체가 작은 예수라고 느껴질 정도였어요." 내달 22일은 양 신부가 사제 서품 45주년을 맞는 날이다. 12월 26일은 칠순이 되는 날이다. 사제 서품 이후 생일 파티를 한 번도 안했던 양 신부는 처음으로 생일 파티를 하려 했지만 한 달여를 앞두고 선종했다. 18년간 한 번도 고향에 가지 않았고 단 하루도 휴가를 가지 않고 청빈과 헌신의 삶을 살았던 양 신부는 나 씨에게 유언을 남겼다. "내가 천당에 들어갈지 못 들어갈지 모르니까 비문에 '회개한 자로다'라고 써달라"고. 안유회 기자

2008-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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